무화과: 청년과 기성세대의 갈등이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 둘은 동등하지 않잖아! 능력과 사회적 힘이 한쪽으로 쏠려져 있는데 이를 왜 갈등이라고 보고 있을까? 과연 젠더갈등일까? 한쪽으로 기울여져 있는데? 갈등이 아니라 차별이야. 또 갈등이라고 보는 시각은 남성의 시각인 건지.
바기: 맞아. 갈등으로 인식하는 순간 동등한 힘의 두 권력이 싸우는 것처럼 보이잖아. 그럴 때 태도에 대한 문제가 자주 언급되는 것 같아. 단순히 ‘서로의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거다.’ ‘생물학적으로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라는 말로 젠더차별이 포장되는 게 너무 화났어.
이처럼 차별의 구조를 갈등으로 보고 있으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가 아닌 태도에 집중해. 그러니까 ‘오빠가 허락해 준 페미니즘’이 나온 게 아닐까? 또한 태도에 대한 지적이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면서 페미라는 것을 밝히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세상이 돼버렸지.
쿼카: 이게 보편적인 한국 사회의 인식인 것 같아. 태도에 문제를 많이 삼는데, 그렇게 말해서는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다는 거야. '친절하게 설명'해 줘야 하는데 왜 그렇게 항상 '공격적'으로 말하고 그러냐는 거지.
무화과: 그런데 우리는 그들과 같은 사회에 살아야 하잖아.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례하다고 우리도 똑같이 무례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우리의 운동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식이 필요한 것 같아. 그러니까 태도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 사회적 불평등 문제로 나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쿼카: 이제는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진 시점인 것 같아. 2016년 이후로 미러링이라는 것이 하나의 방식이었고.(이 또한 빛과 어둠이 공존해) 그 후로 일상에서 갈등의 순간을 마주치는데 보통 이런 대화를 부모님과 많이 하는 것 같아. 가장 화를 많이 내고 갈등이 많이 생기는 곳은 가부장제의 끝판왕인 가족이니까.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없고. 적폐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잖아. 가족 내에서 그런 갈등이 많은 것 같은 건 젠더 뿐 아니라 연령주의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야. 자꾸 태도를 문제 삼는 것도 자식이니까 더 그렇고.. 그만큼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상처되는 말을 하니까 타격이 더 큰거지. 그렇지만 계속 설명해야 하는걸까?
바기: 맞아. 아빠가 나에게 위로로 해준 말이 여성차별적인 말이었는데 태도에 대한 지적으로 논의가 발전되지 않았어. 아빠는 내가 너무 감정적이고 모든 것을 페미니즘의 틀에서만 사고한다고 편협하다고 했어. 대화의 배경 자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니까 자꾸 어긋나는 거야. 결국 상대가 나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선 배경, 즉 인식을 바꿔야 하는 건데. ‘그 또한 우리가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쿼카 : 결국에 우리는 계속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건가? 운동을 할 때도 너무 억울한 순간들이 있거든? 내가 약자고 피해자고 힘든데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해? 내가 상처받아 가면서까지 돌을 던져야 해? 억울하고 화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데도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할 수밖에 없는 건가?
무화과: 우리 사회는 우리를 소수자로 보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피해자라는 위치도 결국 투쟁의 결과라고 했잖아. 투쟁은 결국에 얼마나 지속할 수 있냐의 문제거든. 이 운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분노로만은 안 되겠다는 거지. 분노만 있다면 지속될 수 없고..소수자성을 획득할 수 있는 투쟁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 분노가 아닌 또 다른 무언가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쿼카: 말을 들으면서 불편했던 지점이 있었는데 운동에서 분노는 중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거든? 하나의 불씨를 지피는! 분노에 관한 이야기할 때 여성이 이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이고 히스테릭하다는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분노라는 감정을 매도한단 말이야. 분노란 것은 중요한 건데. 근데 또 분노만 해서도 안 되고 어떻게 다른 것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겼어. 강남역으로 불씨가 지펴지며 과도기를 지나고 있잖아. 분노가 그런 에너지를 가지긴 했지만 동시에 빠르게 소진될 수 있는 것 같거든? 그럼 2024년 현재는 이 감정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시점인 것 같아. 그런데 그게 '이성적으로 봐야 해' 이게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위해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야.
무화과: 학교에서 인권위 활동을 할 때 나의 원동력은 분노였어. 그런데 1년 만에 번아웃이 오고. 비슷한 일을 다시는 하기가 싫더라. 근데 이게 맞을까? 분노가 나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긴 했지만, 동시에 나를 갉아먹더라고.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 운동이 지속되고 하나의 지향점이 되기 위해서는 분노가 또 다른 에너지로 바뀌어야지 되지 않을까 싶어. 아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친절해지는 것보다 다정해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