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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젊은 남성이 군대에 가면, 또래 여성은 애인으로서 성 역할을 강하게 요구받는다.
이는 개인 차원의 연애를 넘어 탈영 같은 일탈 을 방지하는 일종의 국방 행위, 국가안보 실천으로 인식된다.
남성이 조국과 여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장병의 안녕을 지켜주는 것이며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감정 노동, 보살핌 노동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바기: '고무신 거꾸로 신지 마' 라는 얘기 되게 많이 하잖아. 관련된 노래도 있고. 장기연애의 상징= 꽃신이고. 여성이 20대 초반 남성을 사귈 때 군대를 기다리는 건 당연한 과정처럼 여겨져.
병역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남성에게 성적 우위를 부여해. 결과적으로 여성은 무력한 존재가 돼. 결국 여성이 기다리는 게 당연하고 올바른 것으로 만드는 거지. 실제로 또래 남자애들이랑 군대 관련 대화를 할 때 할 말을 잃는 경우가 많았어. ‘내가 이런 말을 감히 해도 되나?’ 싶은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특히 사랑하는 사이라면 미안한 마음과 애틋한 마음이 공존해서 많이 힘들고 당황스러울 것 같아.
무화과: 징병제 국가에서 끌려가는 남성은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약자'로 여겨져. 마치 계속 이들을 위해 복지를 만들고 '배려'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잖아.
바기: 근데 징병 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강자잖아. '이성애 비장애인 토종 한국 남성'
무화과: (쿼카에게) 근데 진짜 힘들지 않았어? 나 진짜 많이 울었던 것 같아.
쿼카: 나도 개많이 움. 군대가 내 눈물 버튼이었어. 그리고 나는 ‘기다린다’는 말이 너무 싫었어. 기다린다는 말 자체가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고정하는 말이잖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곰신1’이 되어버렸어. 이 언어가 내포한 것이 너무 많은거야. 주변에서 ‘너 기다려 줄거야?’ 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기다린다는 말을 안 좋아한다고, 기다리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가 형태가 조금 달라진 거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공감을 잘 못했어.
무화과: 나도 그 말에 공감하는 게. 초반에는 진짜 많이 힘들었거든. 근데 훈련소 지나고 나도 이 생활에 익숙해질 때는 내 시간이 확실해서 너무 좋은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아침에 바뀐 내 상황이 힘들었던 것 같아.
쿼카: 그리고 나는 군대 간 애인을 기다리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많이 들었는데. 이게 지금의 담론인 것 같아. 나는 기다리는 상태가 아닌데 기다리지 말래. 사회적으로 곰신은 군대라는 곳에 있는 남친의 휴게시간을 기다리고 그 시간에 오는 연락을 받고, 위로해주는 등의… 돌봄을 수행하는 존재야.
그리고 웃긴 게 군대 간 애인의 전화를 받으러 가면 모든 사람이 이 상황을 이해해 준다? 얼른 다녀오라고. 나는 이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군대 간 애인이 전화 왔어요’ 한마디면 다 돼. 이건 엄청난 특권이고 권력 아니야?
무화과: 이거 알바할 때도 적용된다? 알바할 때 남자친구랑 전화할 수 있게 쉬는 시간 맞춰주고 그랬어. 나도 그때 전화가 올 시간 되면 친구랑 놀다가 잠깐 빠져서 20-30분 정도 통화했었어. 그 시간에는 회의도 잘 못 잡고.
내가 군대 이야기를 안 듣는다고 헀지, 그 죄책감이 없던 건 아니었어. 만약 맛있는 걸 먹어. 내가 맛있는 걸 먹어도 될까? 얘는 식판에 밥 먹을 건데? 친구랑 놀러 가면 얘는 지금 훈련갔는데 나는 놀러가도 되나? 이런 생각을 했어. 이게 생각보다 많이 괴롭더라.
바기: 군대에서 나오면 20대 중반이잖아. 취업으로 성차별이 만연한 시기인데. 남성은 자신이 군대를 다녀온 피해자라 차별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여성은 부채감과 미안함으로 차별에 수긍하게 되는 것 같아.
안보는 국가의 문제잖아. 근데 국가와 정치는 남성이 느끼는 징병제의 억울함에 대해 '징병제' 자체에 질문하지 못하게 만들어. 그리고 '여성은 왜 안 가?’라는 단편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길을 택한 거지. 그렇기 때문에 분노한 남성들을 위로할 수 있는 기제도 여성의 위문과 돌봄인 거야.
무화과: 남여 모두 가야 된다는 주장 속에서 여성은 아무것도 안 하는 존재처럼 보여. 여성은 애인이나 주변 남성이 군대를 가면 직/간접적으로 변화를 겪어. 그렇지만 남녀 병역평등에 대한 담론에서는 이점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거 같아.
쿼카: 그게 남성이 여성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는 게 아니잖아. 남성이 군대를 간다는 것은 여성의 일이기도 해. 근데 그것을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이야기하는 거지. 아들이 군대를 가는 경우, 애인이 가는 경우, 친구가 가는 경우, 좋아하는 연애인이 가는 경우. 나 친구 갔을 때도 인편 겁나 많이 썼거든.
바기: 성, 연애, 사랑은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하지만 위의 사례를 보면 국가는 자기가 필요할 때만 사적 영역의 개입을 이용하는 느낌이야.
쿼카: 그래 놓고 가정폭력은 사적영역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 진짜 선택적으로 지가 필요할 때만 개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