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기: 어쩔 수 없는 차이를 가지고 차별이라고 하면 자연의 섭리를 반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나도 남성은 물리적으로 강하고 여성은 약한 존재라는 ‘사실’은 어쩔 수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성차가 불변의 영역처럼 느껴지니까 여성운동의 희망이 차단당하는 것 같았는데 이 또한 사회적 권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겨서 좋았어.
쿼카: 체육처럼 몸에 관련된 어떤 것을 할 때 많이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 체력 측정을 할 때 남자/여자 기준이 다르잖아. 선생님이 성차를 두면서 이야기하니까 그런 워딩들이 불편한 거야.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이 늘어났고, 왜라고 질문하기 시작하니까 ‘차별이 아니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차이를 두는 거다’ 이렇게 차별이 아니라고 강조해서 이야기했단 말이야. 근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맞는 말인 것 같은 거야. 불편한 감정, 아닌 것 같은 느낌은 있는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근데 이 문장을 보면서 아! 이거구나. 차이라는 것은 없고, 무엇을 차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결국 권력의 문제구나. 그때 나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어서 좋았어.
무화과: 근데 남자애들이랑 똑같은 기준점을 가지고 체력 측정을 하게 되면 나는 무조건 미달이란 말이야. 키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있을 때 작은 사람에게 박스 두 개를 더 주는 게 평등이라고 하잖아. 그래서 이 차별적인 구조가 필요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불편한 거지.
근데 내가 중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운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중학생일 때 체육을 열심히 하는 여자 학생은 정상성에서 벗어났어. 난 무리 안에서 잘 지내고 싶었어. 같이 놀기 싫은 여자애가 되기 싫어서 열심히 하려 하지 않았어. 이렇게 학습된 몸이 차별에 순응하게 되는 이 제도와, 그렇게 만들어진 내 몸과, '여자'를 만들어내는 사회와 학교에, 나를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낀 거였어.
사진=Interaction Institute for Social Change Artist: Angus Maguire. (interactioninstitute.org, madewithangus.com)
바기: 여성이 약하게 만들어지는 거 같아. 그러다 보니까 나는 위험한 발상이지만 인간은 계속 진화해 왔다는 가정하에 체격이나 키도 그렇게 진화된 것이 아닐까? 남성은 건장하고 여성은 연약하게 키워지고 진화해 온 거지. 인간의 관습으로 내려오다 보니 지금의 성별이 구성된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어.
쿼카: 북유럽권이나 복지가 잘 된 나라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며 울타리가 아예 없어야 한다고 말한대.운동선수들이 기록을 향상하려고 남성 호르몬을 투여받잖아. 어떻게 보면 남성의 신체 능력이 더 뛰어날 수도 있어. 과학적으로 어쩌고저쩌고 해서.
근데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체계 자체를 뒤흔들어 보자! 가 궁극적인 목표인 거 같아. 그게 바로 울타리를 없애는 길인 거지. 체력 측정의 기준에서 남자는 5초, 여자는 10초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를 나누는 체계 자체를 뒤흔들자. 그게 울타리를 없애는 개념인 것 같아.
무화과: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 설문조사를 받았는데. 한 분이 ‘남녀 성차는 분명 존재하고, 취약한 여성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안전의 문제다.'라고 말했어. 이 곳이 그 사람에게 안전하지 않는 공간인 거야. 성 이분법 체계를 뒤흔드는 게 권력자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 뿐만 아니라 성 이분법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도전장을 내미는 거야.
쿼카: 미국에서 노예해방 됐을 때 노예들이 반대했다고 하잖아. 원래 그 집에서 먹고 자고 다했는데 당장에 갈 곳이 없는 거야. 약자들도 규범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규범을 바꾼다는 것은 이 사람에게도 달가운 일이 아닌 거지. 사실 우리도 이 모든 것을 다 엎는다고 하면 받아들이기 힘들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