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기: 나는 가톨릭이 모태신앙인데 낙태랑 피임을 금지하고 있어. 주보에서 ‘낙태는 살인이므로 죄악시된다’는 뉘앙스의 글을 본 적도 있고. 그때 아기가 생기는 건 내 배 안에 타자가 들어있는 거고 따라서 낙태는 살인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국가마다 낙태를 배아와 태아를 가르는 기준이 다 다르잖아. 낙태를 이분법적으로 규정하는 게 맞나? 어떤 이유로?
쿼카: 나도 어렸을 때 엄마한테나 학교에서 임신 중단은 무조건 나쁜 거라고 배웠어. 성교육 자료로 막 태아가 도망가는 유명한 동영상 있잖아. (나중에 그 영상은 조작된 거라고 밝혀졌고) 그래서 중학생 때 ‘임신 중단’을 주제로 찬반 토론이 있었는데 선생님께‘낙태를 찬성하면 할 말이 없는데요?’라고 말했었어. 그렇게 말할 정도로 나에게 임신 중단은 그냥 ‘나쁜 거’, ‘죽이는 거’였던 거야.
바기가 말한 것처럼 여성의 몸과 태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있어.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거잖아?? 근데 이것이 어떻게 여성의 선택권과 태아의 생명권 대립이 될 수가 있어. 말이 안 돼. 옛날에는 전쟁으로 죽는 것보다 출산하다 죽는 경우가 더 많았대. 그럼, 여성의 생명은? 이 전제에서 여성의 생명은 없는 거야. ‘내 몸이 생명이다’가 모든 걸 표현하는 말인 것 같아.
무화과: 임신 중단에 관한 논쟁에서 여성의 입장이 없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한 게, 이 모든 문제가 여성과 태아의 문제로만 환원되었어. 둘의 힘의 균형을 비교해 보면 여성이 강자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되고 그런 것처럼 보여.
그런데 이 문제는 태아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몸과 재생산이 필요한 존재의 싸움인데. 사회가 이 문제를 태아와 여성의 이분법적 구조로 보고 있다고 느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될 거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모성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엄마가 아이를 학대하면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가 있어? 모성도 없냐?’라고 말해. 양육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것은 천인공노한 일이지만. 한국은 모성 이데올로기가 너무 강해.
바기: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나 두려웠어. 난 모성 이런 거 잘 모르겠고 내 아이에게 그런 사랑을 줄 자신이 없거든. 난 최악의 꿈이 임신이야. 그 꿈에서 애의 아빠인 남자는 도망가는 개쓰레기야. 난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무서워해. 지독하게 현실과 맞닿아있어. 난 당장 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이 애는 어떡하지? 내 모든 미래가 막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이 아이가 사랑이 아닌 원망으로 키워지는 꿈을 꾸곤 해.
쿼카: 졸라 현실적이다.
바기: 여성이 이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사회 진출을 하는 게 너무 어려운데 여성에게 낙태는 나쁘다고 하는 게 너무 화가 나. 아무런 기반도 없이 애만 낳으라고 하는 게..
8~90년대에 여아 낙태가 많았잖아. 이는 여성의 생명권이 어떤 권력에 의해 다르게 규정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아. 우리 저출생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누구였지?
쿼카: 그게 나야🎶
“결국 저출생을 문제 삼는 건 경제적 이유와 이데올로기일 뿐. 그리고 국가가 ‘인구’를 다루는 걸 보면 어떻게 국가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지 보여줘. 이전에는 피임 권장하고 낙태 버스 다니고 했잖아.
'자녀를 덜 낳게 하는 방법은 가능하지만, 더 낳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게 너무 맞는 말인 거야. 지금 30대 남성들이 결혼 상대가 없다고, 결혼 못 한 불쌍한 남자들이라고 하는데 당연하지! 여아 다 낙태시켰는데! 태어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혼할 사람이 없다고 아등바등하는 게 너무 열받아.” (다시 우리 세 번째 이야기 中)